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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선영 작성일20-11-16 12:40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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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출소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PG)
[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다음 달 출소하는 초등학생 납치·성폭행범 조두순이 출소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무부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두순은 최근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 출소예정자와 보호관찰 대상자를 위해 운영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인 '허그일자리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교정시설에서 취업 설계를 받거나 출소 후 교육, 일자리 알선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참가자에게는 프로그램 단계에 따라 교육비(최대 300만원)와 취업성공수당(최대 180만원), 훈련참여지원수당(월 최대 28만4천원), 훈련장려금(월 최대 11만6천원), 취업설계 참여수당(최대 25만원)도 지원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조두순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신청 자격이 되는 만큼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무부는 조두순이 67세로 이미 고령이고 너무 알려진 인물이어서 실제 취업으로 연결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laecorp@yna.co.kr
남산타워 보이는 도심 자택 공개했다 ‘뭇매’ / 현각 스님 “연예인일 뿐, 석가모니 가르침 모르는 도눅놈에 기생충” / 혜민 스님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갈 것”

세계일보

N서울타워(일명 남산타워)가 보이는 도심 자택을 공개했다가 논란에 휩싸인 혜민(47·사진) 스님이 “모든 활동을 내려놓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혜민 스님은 15일 늦은 밤 트위터에 “며칠 사이의 일들에 마음이 무겁다”며 “지금까지 출가 수행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에 불법(佛法)을 전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많은 분께 불편함을 끼쳤다”고 썼다.

그러면서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크다. 이번 일로 상처받고 실망하신 모든 분께 참회한다”고 했다.

혜민 스님은 “저는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 선원(禪院)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기도 정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초심으로 돌아가서 부족했던 저의 모습을 돌아보고 수행자의 본질인 마음공부를 다시 깊이 하겠다”면서 “더는 저의 일들로 지금 이 시각에도 분초를 다투며 산중에서 수행 정진하시는 많은 스님과 기도하시는 불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한민국 모두가 코로나바이러스로 힘든 시기에 저의 부족함으로 실망을 드려 거듭 참회한다”며 글을 마쳤다.

세계일보
현각 스님. 연합뉴스


◆현각 스님, 혜민 저격 “석가모니 가르침 전혀 모르는 도둑놈일 뿐”

혜민 스님은 최근 tvN 예능 ‘온앤오프’에 출연해 N서울타워가 내다보이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2층 주택을 공개해 건물주 논란이 일었다.

일부 누리꾼이 등기부 등본을 떼어 보니 혜민 스님이 2년 전 한 불교 단체에 매각했는데 단체의 대표가 혜민 본인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에 법가의 가르침인 ‘무소유’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연예인, 심지어 도둑, 기생충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를 나와 한국에서 외국인 승려로 이름을 알렸던 현각 스님은 같은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속지 마, 연예인일 뿐이다. 일체 석가모니 가르침 전혀 모르는 도둑놈일 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일 뿐”이라고 적어 혜민 스님을 ‘저격’했다.

그는 지난 2016년 한국 불교에 염증을 느껴 이별을 고하고 유럽으로 갔다.

그는 또 다른 게시글에서도 방송에 나온 혜민 스님의 자택 갈무리 장면을 공유한 뒤 “그는 단지 사업자, 배우일 뿐이다. 진정한 참선하는 경험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다만 혜민스님은 입장문에서 자택(건물주) 논란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아 추가 입장이 나올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편 현각 스님은 혜민 스님 입장이 나온 후인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우님 혜민과 통화했으며 70분 동안 사랑, 상호 존중, 감사의 마음을 나눴다”라고 했다.

그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연락하며 지내기로 했다”면서 “내가 조계종에 속하든 그렇지 않든, 혜민 스님은 내 영원한 진리의 형제일 것이고 그의 순수한 마음을 존중한다”라고 전날과는 180도 달라진 자기 생각을 밝혔다.

다음은 혜민스님 글 전문.

혜민입니다.

며칠 사이의 일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출가 수행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에 불법을 전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불편함을 드렸습니다.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큽니다.

이번 일로 상처받고 실망하신 모든 분들께 참회합니다. 저는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부족했던 저의 모습을 돌아보고 수행자의 본질인 마음 공부를 다시 깊이 하겠습니다.

더는 저의 일들로 지금 이 시간에도 분초를 다투며 산중에서 수행정진하시는 많은 스님들과 기도하시는 불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모두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시기에 저의 부족함으로 실망을 드려 거듭 참회합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전남 순천 팔마운동장에 있는 여순항쟁탑. 지난 5월 ‘여순사건위령탑’에서 이름을 바꿔 달았다.photo 이동훈

더불어민주당이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는 가운데, 정작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소병철 의원(초선·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의 부친(고 소석우씨)이 여순사건 때 좌익 반란군이 타도 대상으로 삼은 여수 철도경찰 간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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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 의원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1호 공약’으로 내걸면서도 군경가족이란 사실을 선거공보 등에 공개적으로 밝힌 바 없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순사건 당시 군경가족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현지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난 21대 총선 때 민주당 인재영입 4호로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서 공천받아 국회에 입성한 소병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의 핵심 내용은 여순사건의 진상조사와 함께 희생된 유족들에 대한 의료비와 생활지원금 등 법률적·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과거 ‘여순반란’ ‘여순병란(兵亂)’ ‘여순군란(軍亂)’ 등으로 통칭되다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여순사건’으로 공식명칭이 바뀐 해당 사건을 ‘여순항쟁’으로 격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과거 ‘4·3폭동’으로 불린 제주 4·3사건을 ‘4·3항쟁’으로 격상시킨 것과 같은 경로를 밟아가는 것이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제주도에서 김달삼 등 남조선노동당(남로당)계 인사들이 일으킨 4·3사건 진압을 위해 여수와 순천 일대에 주둔 중이던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 14연대 소속 남로당 계열 군인들이 일으킨 군사반란이다. 상부의 제주 투입 명령을 거부하고 현지에서 무장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길게 보면 제주 4·3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한 당국이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은 제주 4·3사건과 여순 10·19사건을 각각 ‘제주도 인민봉기’ ‘려수군인폭동’으로 기술하고 있다.

국정원 파견 검사 출신

현재 ‘여순사건 특별법’은 순천 출신 소병철 의원을 비롯해 같은 당 주철현(여수갑), 김회재(여수을), 서동용(순천광양곡성구례을), 김승남(고흥보성장흥강진) 등 전남 동부권 의원 5명이 주도적으로 이끌며 민주당 소속 의원 152명이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는 순천 출신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 전남지사 출신 이낙연 대표도 지원사격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년 원대대표는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은 서로 연관된 쌍둥이 사건으로 동일한 수준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며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며 우리 당은 국정감사 종료 후 정기국회에서 여순사건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 전면도발을 앞두고 군내에 잠입해 있던 남로당 프락치 출신 군인들의 선동으로 시작된 반란사건으로 희생된 군경들을 비롯해 공무원 및 우익단체, 그 가족들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 없이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는 것이 성급하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소병철 의원은 광주일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등에서 국가보안법을 다뤄온 검사 출신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인수위 전문위원을 거쳐 국가정보원 초대 법률보좌관으로 부임해 김대중 대통령 낙선 공작인 ‘북풍(北風)사건’을 다뤘고, 주미(駐美)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현 정부에서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국가보안법은 1948년 여순사건 직후 제정된 법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의해 고초를 당한 경찰 출신 부친을 두고, 공안부 근무 경력이 있는 검사 출신으로 사건의 복잡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소 의원이 여순사건을 미화할 소지가 다분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청와대에 있었던 한 관계자는 “소병철 의원이 과거 정권에서는 본인이 여순사건 때 고초를 겪은 군경가족 출신이라는 사실은 동료 검사들 상당수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사시 25회 출신인 소병철 의원은 이명박 정부 말, 호남 출신 첫 대구고검장을 지내며 줄곧 차기 검찰총장, 법무장관 하마평에 올랐었다.




김태선 전 서울시장 회고록에 기록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14연대가 제주 출병 명령에 항명하고 무장반란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군경 및 공무원, 우익단체는 물론 지방 유지와 그 가족들까지 반란군에 의해 적지 않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당시 반란군은 여수 시내를 점령한 직후, ‘인민위원회가 모든 행정기구를 접수한다’ ‘유일하고 통일된 민족정부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보위하고 충성을 맹세한다’ ‘조국을 미 제국주의에 팔고 있는 이승만 정부를 분쇄할 것을 맹세한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민주주의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친일 민족반역자와 악질 경찰관 등을 철저히 처단한다’는 6개항의 결의안을 발표했다.

소병철 의원의 부친인 고 소석우씨 역시 단지 ‘철도경찰’이라는 이유로 반란군에 붙잡혀 구타와 고문 등 적지 않은 고초를 당한 경우다. 소병철 의원의 부친이 여순사건 당시 겪은 고초는 여순사건 당시 수도경찰청장을 지낸 김태선 전 서울시장(1903~1977)이 1974년 중앙일보에 남긴 회고록에서도 소씨의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장, 내무부 장관 등을 지낸 김태선 전 시장은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수도경찰청장을 지내고, 제2대 재향경우회장을 지냈다. 김태선씨의 회고록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수·순천을 장악한 반란군들은 불과 2~3일 동안에 경찰관 400여명과 우익 인사 및 경찰관 가족 500여명 등 9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경찰관들의 수난이 얼마나 처참한 것이었나 하는 것은 당시 여수 철도경찰 지대장 소석우 경위의 체험담을 들어보면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회고록 상세 내용은 19쪽 상자기사 참조)

회고록에 따르면,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 당시 여수 철도경찰 지대장 소석우 경위는 과거 일제가 조성한 비행장이 있었던 여수 신월리(현 한화 신월사업장)에 주둔하던 반란군이 여수 시내를 덮치자 부하 18명을 이끌고 반군에 대항해 싸운다.

하지만 순식간에 부하 13명이 피살되자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내 반군에 붙잡혀 “철경(철도경찰)으로 있으면서 열차 안에서 유부녀 몇 명을 겁탈했느냐” “쌀을 몇백 가마 훔쳐 먹었느냐”는 신문을 당하며 모진 고문까지 당했다고 한다. 이후 수중에 있던 당시 돈 2만7000원을 반군에게 건네고 공개총살 처형장에서 간신히 살아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순사건 관련 회고록을 남긴 김태선 전 시장이 여순사건 당시 수도 서울의 치안을 총괄하는 수도경찰청장이었던 만큼, 여순사건 당시 군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경찰 측 입장이 과도하게 대변됐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김태선 전 시장이 소석우 당시 여수 철도경찰 지대장이 겪은 일을 기록한 대목은 상당히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소씨가 ‘순천시 인제동 55의 11에서 남산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생활상까지 적고 있기 때문이다. 소병철 의원 역시 지난 선거과정에서 자신이 “순천 남산주유소집 삼남매 중 막내였다”며 “아버지가 갱생보호소 순천지소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재향경우회 순천지회의 한 관계자는 “소병철 의원의 부친 소석우씨는 대선배님으로, 과거 재향경우회 순천지회장을 역임하셨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회고록은 당시 상황 전개와도 부합한다. 당시 반란은 남로당 소속으로 군내에 잠입해 있던 지창수(상사)와 김지회(중위) 주도로 일어났는데, 당시 여수를 점령한 약 2000~3000명 규모의 반란군은 지리산으로 입산하는 과정에서 철도를 타고 북상하면서 순천, 광양, 구례, 곡성, 보성, 고흥 등 전남 동부 7개 시군을 차례로 점령했다. 전남 동부 일대가 사실상 남로당의 지령을 받는 반란군에 의해 차례로 적화(赤化)된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약 2달 만에 발생한 최초의 군사반란 사건으로 6·25전쟁 직전 이승만 정부 최대 위기였다. 이에 작전권을 쥔 미군 당국과 이승만 대통령은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반란군을 즉각 ‘빨갱이’로 규정, 대대적 토벌에 들어갔다. 결국 전남 동부 일대는 반군토벌전투사령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송호성 장군이 이끄는 토벌군에 의해 차례로 탈환됐고, 군사반란 주동자인 김지회와 지창수는 각각 사살, 생포되었다. 지창수는 6·25전쟁 발발 직후 처형됐다.

하지만 반란군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함께 희생됐고,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당시 위원장 안병욱)는 여순사건으로 여수에서 124명, 순천에서 439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유가족 측은 “여순사건 희생자는 1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순사건 특별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전남 동부권 의원들. (왼쪽부터) 김승남·주철현·소병철·김회재·서동용 의원.photo 소병철 의원 페이스북



전남 여수 자산공원에 있는 경찰충혼탑과 충혼비(오른쪽). 충혼비는 한동안 땅에 파묻혔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photo 이동훈


땅에 파묻혔다 나온 경찰충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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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당시 군경가족인 소병철 의원이 특별법 제정을 주도하고 있는 ‘여순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복잡한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사건 발발 직후 국군 부대번호에서 ‘14연대’를 연상시키는 ‘4’ 자가 통째로 사라졌을 정도로 언급이 금기시됐으나, 운동권 교과서로 불리는 순천 출신 조정래 작가가 쓴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며 서서히 재평가되는 수순을 밟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여순사건은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전에 적어도 여수와 순천 일대에서는 이미 ‘여순항쟁’으로 격상된 분위기다. 순천의 팔마종합운동장 한쪽에 서 있던 ‘여순사건위령탑’은 지난 5월 ‘여순항쟁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글씨로 ‘동백꽃 붉은 도시 반란의 도시/ 푸른 하늘 서러워 꽃이 지더니/ 흐르지 못한 반백 년 항쟁의 세월/ 이제야 흐르네 우리 가슴에’란 시가 새겨져 있다. 순천 버스터미널 인근 사거리에는 지난 10월 ‘여순항쟁 역사관’이 문을 열었고, 소병철 의원이 검찰 퇴임 후 석좌교수를 지낸 국립 순천대는 지난 10월 12일부터 ‘여순항쟁 역사화전’을 개최했다.

반면 지난 11월 10일 기자가 찾아간 여수시 종화동의 자산공원 한쪽에 세워져 있는 경찰충혼비 일대는 찾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분위기였다. 이 비(碑)는 여순사건 당시 14연대 소속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순직한 고인수 여수경찰서장(총경) 등 경찰관 72위의 영령을 모신 탑이다. 여순사건 직후인 1950년 옛 여수경찰서 경내에 이 비가 세워져 있었을 때만 해도 오가는 사람들이 배례를 했다고 하는데, 이후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아 한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이후 2014년경에 여순사건 당시 격전지였던 ‘쫑포(종포)’와 오동도가 내려다보이는 자산공원 한쪽으로 옮겨졌다. 재향경우회 순천지회의 한 관계자는 특별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재향경우회 입장에서 민감한 주제라 말하기가 좀 그렇다”며 “관심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렇게 ‘동백꽃 붉은 도시’에서 여순사건은 ‘여순항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김태선 당시 수도경찰청장의 여순사건 회고
여수 철도경찰 지대장 소석우 경위 총살장서 구사일생

(전략) 경찰관들의 수난이 얼마나 처참한 것이었나 하는 것은 당시 여수 철도경찰 지대장 소석우 경위의 체험담을 들어보면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소씨는 현재 순천시 인제동 55의11에서 남산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다.)

반군들이 여수시를 습격한 19일 밤 소 경위는 부하 18명을 이끌고 시내로 나가 반군에게 대항했지만 순식간에 13명이 피살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나머지 5명에게 피신할 것을 명령하고 철경 사무실로 달려갔다. 주요 서류를 정리해 버리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벌써 반군들은 철경 사무실 쪽으로 벌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소 경위는 숨을 곳을 찾다가 숙직실 벽장 문을 열어젖혔다. 비좁은 벽장 속에는 이미 3명의 철경들이 숨어 있어 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되돌아서 나오던 소 경위는 사무실 뒷문으로 뛰어든 반군들에게 잡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포승으로 두 손을 결박당했다. 소 경위는 반군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경찰관이 된 지 한 달밖에 안 된다.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마침 소 경위의 주머니에는 2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 소 경위는 7000원을 꺼내 옆에 앉은 반군에게 쥐여주며 살려 달라고 애걸했다. 돈을 받은 반군이 운전하는 동료를 보고 “이 자식 살려줄까?” 하고 물었다. 소 경위는 다시 만원을 꺼내 그들에게 주면서 사정했다.

반군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를 집까지 태워다주고 돌아갔다. 죽을 뻔했다 살아난 소 경위는 그대로 있다가는 또 반군들에게 잡힐 것 같아 여수를 벗어나기로 하고 밤을 틈타 떠났다. 그는 약 20리 떨어진 미평(여수시 미평동)까지 가서 또 반군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소 경위는 “어린아이 병이 위독해 약을 지으러 간다”고 둘러댔다. 반군들은 이 말을 곧이들었으나 지방폭도 중에서 얼굴을 아는 자가 소 경위를 가리키며 “저놈은 여수 철도경찰대장”이라고 소리쳤다.

반군들은 소 경위를 미평 주재소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시작했다. 반군들은 “철경으로 있으면서 열차 안에서 유부녀 몇 명을 겁탈했느냐”면서 당치도 않은 신문을 했다.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자 반군들은 장작으로 소 경위를 마구 두들겨 팼다. 고문에 못 이긴 소 경위가 “세 번 했다”고 거짓 자백하자 이번에는 “쌀을 몇백 가마 훔쳐 먹었느냐”고 다그쳤다. “100〜200가마 훔쳐 먹었다”고 아무렇게나 대답하자 반군들은 “그럼 됐다”면서 소 경위를 유치장으로 밀어넣었다.

소 경위는 깜깜한 유치장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손 짚은 곳이 끈적끈적했다. 오물인 줄 알고 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피비린내가 코를 울컥 찔렀다. 유치장 바닥은 선혈로 가득했으며 칼에 찔려 죽은 10여구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모두 학살당한 경찰관들이었다. 어둠 속에 눈이 익자 시체 가운데서 한 명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철경 사무실 벽장에 숨었던 부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깨가 반쯤 잘려 팔 하나가 밀려 나간 무참한 꼴이었다. 그는 소 경위를 알아보고 “주임님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주임님은 칼에 맞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모기 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하다 눈을 감고 말았다.

새벽이 되자 반군들은 소 경위를 끌어내 여수경찰서로 데려갔다. 여수경찰서에서도 총살당한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반군들은 밤 9시쯤 되자 유치장에 갇혔던 10여명을 불러내 경찰서 뜰에다 나란히 세워 놓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나란히 섰던 경찰관들이 낙엽처럼 쓰러졌다. 소 경위도 물론 쓰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소 경위는 추운 기를 느꼈다. 그는 “내가 틀림없이 총살당했는데 웬일인가” 하고 몸을 일으켜 보았다. 아무데도 상한 데가 없었다.

살았다고 생각한 소 경위는 여수 뒷산으로 허둥지둥 기어 올라갔다. 죽을힘을 다해 소라(여수시 소라면)까지 다다랐으나 날이 밝자 또 반군에게 잡히는 몸이 됐다. 반군들은 피투성이의 소 경위를 보자 처형장에서 도망 온 것을 당장 알아차리고 총대로 소 경위의 등어리를 수없이 펑펑 내리쳐 반죽음이 된 그를 소라 유치장으로 끌어넣었다. 유치장에는 소라 지서장과 여수경찰서 기마대장이 먼저 끌려 와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져 보기조차 처참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그들은 총살장으로 또 끌려 갔다. 총살장은 공동묘지였다. 공동묘지에는 발가벗긴 채 학살된 시체들이 즐비하고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후략)

자료 : 1974년 11월 21일, 중앙일보 게재 ‘김태선 회고록’


여수·순천=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
정부의 공식 발표로 양대 항공사 빅딜 성사 기대감 '업'
독과점 우려에 혈세투입 논란, 경영권 분쟁, 노조반발 등

인천국제공항에 항공사들의 항공기가 주기돼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정부의 공식 발표로 업계 1·2위 항공사간 빅딜(Big Deal·대형거래)이 성사될 전망이지만 인수합병(M&A)을 위한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독과점 우려와 함께 혈세 투입 논란, KCGI와의 경영권 분쟁, 노조 반발 등 해소돼야 할 장애물이 남아 있어 선결돼야 대형 M&A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이 이뤄져야 한다.

양사의 합병은 2개의 대형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 뿐만 아니라 진에어(대한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이상 아시아나항공) 등 3개의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간 결합이기도 해 독과점 논란이 일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양사가 합병을 통해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되면서 공정위가 복수민항 체계가 무너져 경쟁을 제한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말 기준 국내선 점유율은 각각 22.9%, 19.3%로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양사의 LCC 자회사까지 더하면 점유율이 62.5%에 달해 절반을 넘어선다. 공정위가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LCC 3사를 따로 분리해 단계적으로 통합해 대형 LCC를 만들겠다는 방침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M&A는 FSC 2곳과 LCC 3곳간의 결합이어서 독과점 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서도 “향후 M&A 추진 과정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해소해 나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민간 기업에 혈세가 투입되는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KDB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제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라는 대의가 있기는 하지만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어서 혈세가 투입될 수 밖에 없다.

앞서 공정위가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합병을 승인한 것처럼 아시아나항공을 회생 불가능한 회사로 판단해 대한항공과의 결합을 허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정위가 '회생 불가'로 판단한 기업에 산은이 정상화를 명분으로 추가로 혈세를 투입한다는 논란이 더 크게 일 수 밖에 없다.

산은이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산은이 재무적투자자(FI)로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투입하면 한진칼 3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현재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지분율 41.14%)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조현아-반도건설 3자연합(46.71%)간 경영권 분쟁이 치열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정부기관이 의도와 관계없이 개입하게 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조 회장으로서는 우군을 얻을 수 있는 기회지만 3자 연합으로서는 변수가 늘어나는 것이어서 달가워 할 리가 없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함께 양사의 합병 과정에서 중복 노선과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양사 노조의 반발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공식화로 양대 항공사의 M&A가 추진되긴 하겠지만 순탄하게 성사될지는 미지수”라며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대의 명분은 충족하지만 정부가 독과점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너무나 많은 이해 관계자들이 얽혀 있어 선결돼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왼쪽)과 아시아나항공.ⓒ데일리안 DB


데일리안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쿠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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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거액의 도박 빚을 안고 잠적했다고 알려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윤성환(39)이 인터뷰를 통해 의혹을 전면으로 반박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윤성환은 16일 통화에서 “나는 잠적한 적이 없다. 도박 문제는 더더욱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말 억울하다. 결백을 밝히고 싶다. 경찰이 조사하겠다고 부른 적도 없다. 경찰이 부르면 언제든 가겠다. 지금은 내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한 매체는 ‘삼성 라이온즈 30대 프랜차이즈 선수 A가 거액의 도박을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이 윤성환을 가리켰다.

윤성환은 연합뉴스에 “채무가 있는 건 맞지만, 도박과는 무관하다. 조직 폭력배와 연루됐다는 건 더더욱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내가 도박과 전혀 무관하다는 걸 경찰 조사에서 밝혔으면 좋겠다. 사실이 아닌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윤성환은 잠적설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9월에 삼성 구단 관계자가 ‘우리는 윤성환 선수와 2021시즌에 계약할 수 없다. 은퇴하거나, 자유계약선수(FA)로 풀어주는 등 선수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며 “정말 서운했다. 나는 삼성에서만 뛰었고, 우승도 여러 차례 했다. 은퇴는 삼성에서 하고 싶었다. 나는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를 구단이 예우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대표이사와 면담을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는 윤성환은 “시즌 막판에야 다시 구단에서 연락이 왔다. 그땐 통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 연락을 피했다. 다른 관계자와는 연락이 되는 상태였다. 이걸 '잠적'이라고 표현해도 되는가”라며 반문했다.

윤성환은 2004년 삼성에 입단해 한 팀에서만 뛰었다. 삼성 프랜차이즈 최다인 135승을 거뒀고, 2011∼2014년 4시즌 동안 팀의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해외 원정도박 사건이 불거지면서 고초를 겪었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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